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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 Life/Football Story

재일동포와 축구 (3)

재일동포와 축구 3편 

□ 재일동포와 J리그 

 1993년 일본은 J리그의 출범과 더불어 2002년 월드컵 일본 개최 유치준비로 인해 축구 붐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재일동포 축구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어났는데, 또한 게리 리네커, 리트바르스키, 스킬라치 등 당대 유명했던 외국인 
선수들이 J리그에 합류하면서에 따라 어린 재일동포 선수 대다수가 J리그를 동경하며 프로선수로 뛰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됬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재일조선인 축구단은 쇠락에 길을 걷기 시작해 1999년에 재정난으로 해산되었다.

1993년 J리그 출범 후 일본 전역에 축구열풍을 일으킨 외국인 선수 4총사



 

□ 재일동포 출신의 최초의 J리거 “신재범” 
 1993년 화려하게 출범한 J리그를 어린 재일동포 선수들이 동경하는 가운데 출범때부터 3년간(93~95년) 활약한 
재일동포 출신의 최초의 J리거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신재범(1971년생)이었다.   

 그는 도쿄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에 진학하였지만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1990년 
브라질 축구유학을 떠나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유학중 간염을 앓아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2년 봄, 그는 JR히가시 니혼 후루카와 사커클럽(現 JEF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치바)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는 반년간 이어진 24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당시 감독이던 나가이 요시카즈 감독에게서 최종합격 통보
를 받고 그렇게 꿈꾸던 프로선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기존에 자이니치 와쿠로 들어온 미셸 미야자와가 일본국적을 
취득하자마자 도쿄도립우에노고등학교 통신제를 통해 일본학교 고졸 학위를 취득하여 자이니치 와쿠 대상자가 되어 
1993년 8월 14일 기다리던 대망의 데뷔전을 치루며 JEF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J리그를 동경했던 어린 동포 축구선수들과는 달리, 그의 J리그 진출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사례로 인해 어린 선수들이 J리그를 지향하게 되면 재일조선축구단의 존재 의미가 떨어질 것 같다는 위기감도 
있었을 것이며, J리그 유소년 시스템으로의 선수 유출 등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 했기 때문이었을것이며 무엇보다 축구
라는 종목으로서의 민족의 자긍심 또는 일본축구에 동화 된다라는 생각도 있지않았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추론해본다.

그는 조직을 중시하는 일부 총련계 간부들 눈에 조선대학교를 중퇴하고 재일조선축구단을 외면한 배신자로 비추어
졌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재일사회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고, 총련계 기관지에 그에 대한 기사가 실리지 못했
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의 유명 신문사인 아사히신문은 5일 연속 특집으로 그에 대한 기사를 낼 정도로 반응이 달랐
다. 또한 J리거가 되었다는 이유로 북한대표로 선발 되는길도 막혀버렸다.  제프 입단테스트 전 그는 북한의 유니버시
아드 축구대표팀 후보에 올랐으나 그가 J리그의 입단하자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아이러니 하게도 훗날 J리그에 진출한 안영학, 정대세의 조총련 기관지에 집중 연재기사가 실리고 북한대표팀에 선발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축구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었을것이다.

 이후 제프유나이티드에서 3년간 18경기 1골을 기록하였고, 95년 퇴단하여 당시 JFL의 후지츠공업 축구부(現 가와사
키 프론탈레)에서 선수생활을 이어 나갔고 2000년까지 요코가와 전기(現 도쿄 무사시노 시티FC)에서 활약하고 은퇴
하였으나 2001년 다시 복귀후, 2002년부터 2003년까지 FC코리아에서 플레잉 코치로 합류하였었다. 이후 지역리그
의 아르테 다카사키, FC간쥬 이와테 등 팀들의 코치와 감독을 맡아 지도자생활을 이어나갔으며, 현재 재일동포축구 
방면에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이    름 : 신재범
생년월일 : 1971년 9월 27일 
포 지 션 : FW 
신체사항 : 176cm 
선수경력  
1993 ~ 95 : JEF 유나이티드 이치하라(J리그)  1996 ~ 96 : 후지쯔공업(JFL)
1997 ~ 98 : 사야마(관동리그) 
1999 ~ 01 : 요코가와 전키(JFL) 
2002 ~ 03 : FC코리아 

 

 

□ 자이니치 와쿠(在日枠)
 재일특권이라는 내용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법과 제도 등 여러 가지 내용이 있는 범위지만 이곳에서
는 재일범위(在日枠), 일본어로 자이니치 와쿠라고 불리는 J리그에서의 제도만 다루기로 한다. 기존 J리그에서는 외국
인 4명, 아시아쿼터 1명, 동남아쿼터 1명과는 별도로 국적선수 테두리(와쿠)가 있었으며 이것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
란 외국인 선수를 외국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제도로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의 의무교육을 수료한자 또는 일본이 인
정하는 고교와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외국인”을 팀당 1명씩 외국 국적으로 취급하지 않는 제도였다. 

 이 제도는 1981년 일본의 비와호 전국체전 때 역사상 첫 외국인 선수로 출전하여 뛰어난 활약을 펼친 프랑스 국적
혼혈 선수인 미야자와 미셸의 프로진출을 돕기 위해 이 특별 규정이 만들어졌다.  (그는 1993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비록 제도의 첫 시작은 재일동포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제도로 인해 신재범을 시작으로 많은 재일동포 선수
들이 J리그를 꿈꿀 수 있었고 실력 있는 선수들은 프로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얼핏 유리하게 보이면서도 결코 유리하지만은 않은 양날의 칼을 가진 규정으로서 선수들의 원활한 입단을
위해 2005년 박강조, 안영학, 리한재가 J리그 선수협회를 찾아가 자이니치 와쿠의 팀당 인원을 늘려달라는 의견서도 
제출하였다.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현재 J리그에서는 2019시즌 부터 외국인 선수 보유 규제를 풀어 외국인 
선수는 1부리그 5명, 2부와 3부리그는 4명으로 제한하였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자이니치 와쿠도 풀렸으며, 향후
실력만 있다면 자이니치 와쿠에 상관없이 팀에 입단할수 있게 되었다. 

□ 참고문헌 및 사진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 - 신무광
비셋고베 - 박강조
스포탈 코리아 - 안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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