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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와 축구 (3) 재일동포와 축구 3편 □ 재일동포와 J리그 1993년 일본은 J리그의 출범과 더불어 2002년 월드컵 일본 개최 유치준비로 인해 축구 붐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재일동포 축구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어났는데, 또한 게리 리네커, 리트바르스키, 스킬라치 등 당대 유명했던 외국인 선수들이 J리그에 합류하면서에 따라 어린 재일동포 선수 대다수가 J리그를 동경하며 프로선수로 뛰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됬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재일조선인 축구단은 쇠락에 길을 걷기 시작해 1999년에 재정난으로 해산되었다. □ 재일동포 출신의 최초의 J리거 “신재범” 1993년 화려하게 출범한 J리그를 어린 재일동포 선수들이 동경하는 가운데 출범때부터 3년간(93~95년) 활약한 재일동포 출신의 최초의 J리거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신.. 더보기
재일동포와 축구 (2) 재일동포와 축구(2) 국내와의 큰 교류는 없었지만 재일교포들은 “축구에서만큼은 일본에 질 수 없다”라는 신념으로 일본 내에서 큰 활약을 했으며,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장벽이 심했던 과거에는 일본전역에서 이름을 날린 재일축구 선수들이 많았다. 조선학교(조총련계)는 일본에서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했기에 축구대회 참가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으나, 하지만 전국대회 참가하는 일본 팀과의 연습경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실력과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 해방 후의 재일축구1948년 민족학교가 총련계를 통해 설립되었기에 조선인학교 폐쇄령이 실시되었고, 시위 중 16세 학생이 총에 맞아 희생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1949년 도쿄 조선고급학교가 도쿄도 관할의 공립학교인 도립조선인학교로 바뀌었다. 도립학교로 바뀌면서 대회에.. 더보기
재일동포와 축구(1) 재일동포와 축구(1) □ 재일동포의 정의 재일동포는 일본으로 이주하여 사는 한국 국적의 사람을 표현하는 말로만 생각 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일제강점기 독립 전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 및 그 후손들” 일컫는다. 2010년 일본 통계 기준 약 57만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으며, 통계가 시작된 80년대 이후 최고치는 1990년대 69만명이다. 20년 사이에 많은 동포들이 일본으로 귀화 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현재 재일외국인 중 재일중국인이 가장 많지만 귀화자까지 합치면 재일한국인이 가장 많다. □ 재일동포의 국적 재일동포의 국적은 두가지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대한민국(大韓民國)” 또 다른 하나는 “조선(朝鮮)”이다. 대한민국 국적자는 현재 일본정부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국적이며 대한민국의 국적과 여권을 .. 더보기